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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름] [중앙일보] '기적의 원샷 치료제' 킴리아 기다리다 떠난 은찬이의 선물

작성자 : 관리자 I 작성일 : I 조회수 : 640

고 차은찬 군의 어릴적 모습. 은찬이는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소아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되고 싶어했다.

“은찬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킴리아 주사, 같은 병 앓는 동생들이 맞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은찬이가 정말 좋아할 거에요.”

고(故) 차은찬 군의 어머니 이보연씨는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최근 재발성 백혈병을 앓던 생후 18개월 아기가 킴리아 치료를 받은 뒤 회복 중이라는 기사를 읽었다며 반색했다. 은찬이와 같은 병을 앓던 아기는 킴리아 주사를 맞고 한 달 만에 몸속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져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은찬이는 나중에 커서 소아혈액종양내과 의사가 되어서 자기처럼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겠다는 꿈을 꿨다”라며 “하늘에서 다른 아이들, 동생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단 걸 알게 되면 분명히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찬이는 6살 때 B세포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은찬이는 골수이식과 방사선 치료 등 고된 항암치료를 묵묵히 버텨냈지만 병은 끈질기게 아이를 괴롭혔다. 2020년 초 세번째 재발한 뒤 의료진은 아이에게 남은 치료방법은 킴리아 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더는 이식이나 항암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킴리아는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의 면역세포 항암제다. 환자의 T세포를 채취해 맞춤형 세포치료제(주사제)를 만들어 다시 들여온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다시 프로그래밍해서 암세포를 골라 공격하게 한다. 한 번만 맞아도 암세포가 대폭 사라져 ‘기적의 원샷 치료제’로 불린다. 다른 치료법을 할 수 없고, 남은 수명이 3~6개월에 불과한 환자가 이 치료제의 대상이다. 80% 넘는 완치율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적인 신약이 세상에 나와 있었지만 은찬이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킴리아의 국내 사용 허가가 나지 않아서다. 미국에선 2017년 유럽 2018년, 일본 2019년 등 선진국에선 이미 허가가 이뤄져 많은 환자가 킴리아 치료를 받고 있는 때였다.
이씨는 “당시 국내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 약을 쓸 수 없었고, 해외에 나가서라도 치료를 받아보려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나갈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은찬이의 기다림은 길어졌다.
이씨는 “재발성 백혈병은 6개월을 넘기기 어려운데 우리 은찬이는 킴리아만 기다리며 1년 4개월을 견뎠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는 사력을 다해 버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6년 집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은찬이의 모습. 아프기 전 은찬이의 원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고 한다. 아이는 고된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악기 연습을 놓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1년 3월에야 킴리아의 국내 사용을 허가했다. 5억원에 달하는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은찬이네는 집을 팔아야했다. 이씨는 “약을 쓸 수 있게 되어서, 팔 집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좋아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치료는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씨는 “각종 승인 절차가 길어졌고 약가 협상 등 문제가 발생해 약을 바로 쓸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는새 아이는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었고 혼자 거동하기도 어려워졌다. 의식을 잃는 날도 있었다. 이씨는 “어느 날 은찬이가 기적적으로 깨어나서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첫마디가 ‘엄마 나 킴리아 했어요?’였다. 자기가 치료를 받고 깨어났다고 생각했나 보다. ‘미안해 아직 못했어’라고 말했는데 그때 실망하던 아이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고 말했다. 킴리아만 기다리던 12살 은찬이는 2021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치료 시작을 하루 앞두고서다.

이씨는 은찬이를 보낸 뒤 은찬이를 위해 살기로 했다. 그는 “내 아이는 그 약을 쓰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쓸 수 있게 되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킴리아 건강보험 적용 및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신속 등재 제도’ 마련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국정감사에 출석해 은찬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증언했고, 국민 청원을 진행하고, 1인 시위와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그런 투쟁 끝에 올 4월 보건복지부는 킴리아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환자 부담이 수백만 원대로 확 줄었다. 이씨는 “그새 5억원에 달하는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건보 적용만 기다리다 죽어간 아이들도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3월 식약처가 킴리아 국내 사용 허가했다는 소식에 행복해하는 은찬이 모습. 곧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기념사진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12년 4개월 은찬이의 짧은 삶과 이후 달라진 세상을 에세이로 담아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를 출간했다. 이씨는 “은찬이 주치의 선생님이 ‘은찬이는 세상 어떤 소아암 전문의보다 많은 아이를 살려낸, 미래의 의사’라고 얘기해줬다”라며 “다른 아이들은 걱정 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