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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출판사] [조선일보] 지구가 오래된 별이라 좋다… 내가 할머니라 좋다

작성자 : 관리자 I 작성일 : I 조회수 : 5122

지구가 오래된 별이라 좋다… 내가 할머니라 좋다

日 소설가 와카타케 치사코, 첫 소설 '나는…' 출간 기념 訪韓


청춘(靑春)은 진즉에 끝났고, 이제 계절은 소멸의 쪽을 향해 간다. "말하자면 청춘이 아니라 현동(玄冬)의 소설을 쓴다. 나는 할머니가 좋다. 젊은 시절의 사회적 역할, 아내와 어머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의 진심으로 살아가는 시기다. 애초에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반응을 기대하질 않으니, 꾸밈없이 '나는 이런데, 어떠냐?' 당당할 수 있다. 자유롭다." 첫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국내 번역을 맞아 처음 방한한 일본 소설가 와카타케 치사코(64)가 말했다.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와카타케 치사코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와카타케 치사코는 "나이 들어 처음 낸 소설로 상도 받고 별안간 유명해지니 두 아들·딸이 무척 놀라더라"며 "'봤냐, 내가 이정도다' 우쭐할 수 있어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지난해 일본 '문예상' 최고령 수상으로 데뷔해, 지난 1월 일본 문단의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상'까지 거머쥐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74세의 독거 노인 모모코를 주인공 삼아, 남편을 잃고 고독에 진저리치던 노년이 내면의 수많은 목소리와 대화하며 스스로의 긍정으로 나아가는 소설. '암묵적인 합의가 인간을 늙게 만든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산다면 나는 의외로, 가는 데까지 갈 수도 있겠다.' 책은 아마존재팬 소설 부문 1위에 오르며 발매 한 달 만에 5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 "시대 흐름과도 맞았겠지만, 할머니가 천천히 걷는 속도로 이어지는 철학 덕분 아닐까. 지금 이 사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일 테니."

그 또한 느린 속도로 걸어왔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쓴 건 55세가 넘어서다. 남편이 뇌경색으로 세상을 뜬 직후였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희망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골에서 태어났고, 교사 시험에서 매번 떨어졌고, 도쿄에 가서 TV 극본 작가가 되려 했으나 결국 스물여덟에 결혼해 줄곧 주부로 살았다. 사회 진출의 문이 닫혔다는 소외감이 있었다." 그러니 남편이 죽고 나서 "아주 약간은 기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고백은 자아의 복원과 맥이 닿아 있다. "오로지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는 기쁨. 삶의 중요도를 1부터 5까지 줄 세운다면, 1~4가 자유, 사랑은 5번 정도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 그 정도다. 여자들이여, 사랑에 얽매여 인생이 꼬여선 안 된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합평회에 나갔다. 그리고 2014년부터 2년 가까이 자신의 경험을 일부 담아 이 소설을 썼다. 일관된 주제의식은 늙음과 자립. "늙음은 격리돼야 할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주변 친구들은 '이 나이에 새삼스레 뭘 시작하느냐'고 스스로를 낮추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러 소리 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넌 충분히 좋아. 힘내.' 자신을 격려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아무도 믿지 않더라도, 나만은 나를 믿어야 한다."

그는 소설 첫 줄부터 고향인 도호쿠(東北) 지방 사투리를 썼다. 일본에서도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로 손꼽히는데, 한국어판은 지리적 위치가 비슷한 강원도 사투리로 번역됐다. "표준어가 머리의 언어라면, 사투리는 몸통의 언어다. 몸속에서 함께 나이 먹은 언어다." 그는 소설에 '사투리란 나의 가장 오래된 지층'이라고 썼다. 소설 제목도 동향(同鄕) 사람인 미야자와 겐지의 시 '영결의 아침' 구절에서 따왔다. "지금도 내 내면의 목소리는 어릴 적 쓰던 사투리다."

할머니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오래 묵은 것을 사랑하며, '지구 46억년의 역사' 같은 과학책을 즐겨 읽곤 한다. "지구가 이렇게 오래된 별이라는 게 좋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가득 찼잖나. 좀 더 오래 살아서 앞으로 어찌 변해가는지 지켜보고 싶다."

계절은 늙고 있으나 결코 끝장나지 않고, 그 역시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라는 단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 내 목표는 좋은 소설을 한 편이라도 더 쓰는 것이다. 다만 조금만 더 놀고 싶다. 가을부터 쓸까 한다."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 입력 2018.08.29 03:01
    *기사 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9/2018082900014.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